Tuesday, March 23, 2010

Google의 개방성

구글은 1998년, 1999년경에 태동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 설립자인 Andy Bechtolsheim의 10만불 투자를 처음 받았다. 그해 7월 2천5백만불의 거금이 투자되었다. 유명한 VC (벤처 캐피탈)인 Kliener Perkins Caufield & Byers Sequoia Capital이었다. 5년 동안 매출이 없었고, 더군다나 미국내 닷컴 버블이 꺼져가던 시기여서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구글의 사업모델은 사용자들의 검색 query를 모아서 검색 성능을 좋게 해주는 입력으로 재사용하면서 광고 사업을 하는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한다. 그런데 어떻게 구글은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었을까? 이러한 사업모델을 한국내 VC에 제안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 VC들의 투자 성공율이 매우 높고, VC에 속한 분석가 (Analysist)의 능력이 뛰어나서 구글의 가능성을 믿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론을 들자면 한국인들의 분석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성장을 보더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인터넷 사업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필자도 미국의 인터넷 기업의 엔지니어와 같이 일해볼 경험이 많이 있었는데, 한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능력이 절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경험과 미래 예측 능력은 더 뛰어난 것이 많이 봤다. 만약 순수히 VC들이 구글에 거금을 투자했다면 그들의 Risk taking 정신, 기업가 정신이 우리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구글이 알고 보면 친 미국 정부 회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음모, 반전, 첩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인터넷의 기본 철학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는 구글은 개방성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고 있다. 이것 때문에 중국 정부와의 갈등도 있었다. 중국 정부는 현존하는 최대 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갈등을 표출하기 싫어서인지 애써 구글사태와 미국 정부와의 외교 관계와는 무관하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중국의 구글 사태에 대해서 돌이켜보자.
2006년에 구글은 google.cn을 중국에 열었다. 중국에서는 2000년도부터 Baidu(百度)라는 검색 사이트가 시장을 석권해오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네이버 포탈 사이트처럼 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왔다. 그런데 구글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점차 구글의 사용량이 늘어나자 중국 정부측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이 구글로 중국의 인권 문제를 검색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측은 구글에 인권 문제 검색을 할 수 없도록 요구했다. 구글측은 중국 정부의 검열에 대해 인터넷 기본정신을 위배한다면서 중국 정부에 검열을 당하느니 중국내에서 구글을 철수하겠다고 하였다.

원인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 경우 구글은 미국 정부의 대리전을 치루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인권 문제에 대해서 중국 정부를 자극하기 어렵지만, 구글은 민간 기업으로 중국 정부의 비민주적인 곳을 꼬집고 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취약한 인권 문제를 공격당하는 것이 국가를 통치하는데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듯, 외교적인 간섭이라고 미국 정부를 비난하곤 한다.

다시 구글의 사업 모델을 생각해보자. 2008년 HBR (Harvard Business Review)에서 구글의 데이타 센터를 이루는 컴퓨터 댓수가 백만대를 돌파했다고 한다. 그 규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증가하고 있다. 구글의 CEO인 Eric Schmidt은 그들의 꿈이 300년쯤 걸릴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는 한다.

그들의 꿈이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의 데이터 센터라고 한다. 그러할 경우에 그들의 모토가 "Don't Be Evil"이라고는 한다. 첩보영화의 반전은 착하기만 했던 정부 관료나 주인공은 지원해주고 있던 큰손이 알고 보니 사악한 지구 정복의 속셈을 지니고 있던 악당으로 드러나는 경우다. 구글의 성공이 미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지원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두번째 시나리오는 단지 fiction으로 재미있게 회자되기에는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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