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9, 2016

Almost Famous와 Sing Street

Sing Street (2016, 이하 _SS_)는 한마디로 85년 아일랜드의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꿈을 잃지 않는 한 고등학생이 Rock 밴드 만드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만든 존 카니감독은 상투적인 스토리를 아주 맛깔나게 만들어내는 음악 전문 감독이다. 이전 영화 Once와 Begin Again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을 영화이다.

Once가 가난한 길거리 음악가가 음악하는 얘기, Begin Again은 영국에 온 음악가가 다시 음악 하는 얘기였다면, 이 영화는 잔잔한 뮤지컬 드라마, 아일랜드판 응답하라 1985쯤 될까. _SS를 보고 나니, Almost Famous (2000, 이하_AF_)가 연상되어 두 영화를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_AF_는 미국판 응답하라 1978이라고 할까. 그만큼 비슷한 점들이 있다.

AF(Almost Famous)와 SS(Sing Street)의 닮은점


1. 닮은 점: Mentor의 존재

두 영화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멘토가 등장한다. _AF_의 주인공 윌의 누나인 애니타. 사이먼 앤 가펑클을 좋아하는 그녀. 독립하여 가족을 떠나면서 동생에게 The Who의 Tommy를 들어보라고 한다.

윌의 누나
70년대 Rock 음악에서 주로 흐르는 정신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자유였다. 전체 앨범이 하나의 곡인 Tommy는 그 후 Pink Floyd, Yes, Rush, Genesis 등 컨셉앨범을 낸 모든 Rock band에 영향을 준다. 두 영화 모두 누나, 형 형제가 동생에게 스스로 일어서라고 부추긴다.

또 한명의 멘토. _AF_는 작고한 Phillip Seymour Hoffman이 분한 롤링스톤즈 매거진의 에디터 Lester Bangs가 멘토로 등장한다. 평론가가 되려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인물, 밴드에 냉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Jethro Tull과 Iggy Pop을 높게 평가하고 Doors는 약쟁이라고 폄하하는 Lester

_SS_에서는 형 브랜든의 존재가 중요하다. 주인공의 육체적인 성장은 부모의 역할이었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그의 형이었다. (물론 그의 누나도 있었으나 방관자였다.) 감독들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고증을 통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부모들이 막내 아들에게 영향을 준 것보다 왜 형제들이 영향을 많이 주는걸까? 부모들은 이미 20~30년 시대 격차를 가지고 자녀들을 충고하고 있다. 나이 많은 형제들은 시대에 어긋난 가이드 때문에 실패를 겪고,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에게는 충고를 하고 있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성공한 감독들은 형제들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도전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형 브랜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대 시대에 부모들이 그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가이드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일까. 진정한 futurist는 소년 소녀 그들 자신이다. 기성세대는 다른 사람들을 경쟁에서 이기고, 파괴하는데 익숙해 있다. 남들을 이겨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주입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주인공
코너는 이미 깨달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힘이 그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 준다는 것.



2. 닮은점 : 여주인공

여주인공들이 수동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을 듯.
Penny Lane

자신을 숨기고 살고 있는 Penny Lane. 윌에게는 조금씩 맘을 열어가지만 이름도 Beattles의 곡에서 따온 가명을 쓰고 있다. 혼자 일어서고 싶어하지만 여성에게는 시대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일어설때마다 부딪히는 보이지 않는 벽에 좌절하는 여주인공. 포레스트검프의 제니를 연상하게 한다.

80년대 패션의 Raphina
라피나도 전형적인 여성 역할이다. 작가가 남성이다보니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80년대초 우리나라 여학생들의 상황도 비슷했을 듯. 더 나은 삶의 꿈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꿈을 펼칠 수 없는 사회적인 환경에 부딪혀 절망했던 80년대 젊은 여성을 그리고 있다.


3. 닮은 점 : 추억의 터치

나와 비슷한 또래의 미국인 친구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에 하나로 _AF_를 꼽았더니 의아해했다. 5~60년대에 태어난 미국인들은 그럴 수 있는데, 70년대 태어난 한국인이 왜 좋아하냐는 것. 마치 80년대 태어난 아랍사람이 응팔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라고 할까.

아마도 78년도를 청소년 시기로 지낸 미국인들 만큼 향수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_AF_를 통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나라가 미국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이유이었을 것 같다. 어릴 때 TV 방송의 상당 시간을 차지했던 미국 TV 시리즈, 지금은 배철수와 음악캠프 이외 거의 없는 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황인용의 영팝스, 박원웅과 함께, 이종환의 디스크쇼, 성시완의 월드뮤직, 전영혁의 25시의 데이트. 그리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많은 영화음악 프로그램들.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중에 하나.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컬럼니스트를 한 명씩 초대해서 새로나온 Judas Priest와 Metallica 새앨범을 소개했었다.  Judas Priest의 앨범이름은 Turbo (1986), Metallica는  Master of Puppets (1986). 두 밴드는 2016년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내가 그들과 같이 살아왔다는 생각과 내 선배들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David Bowe, Prince, Keith Emerson 등 7~80년대 전성기를 보냈던 스타들. 내가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던 스타들. 부디 편안하시길.



AF(Almost Famous)와 SS(Sing Street)의 서로 다른점

미국은 자유, 아일랜드는 가난과 절망의 나라.

78년의 미국, 85년의 아일랜드. 시대는 _SS_가 10여년 최근이지만, 사회적인 상황은 훨씬 열악했다. 영국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을 하얀흑인이 비하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80년대의 아일랜드는 경제적인 상황이 서유럽에서는 바닥이었다고. 지금의 아일랜드는 1인당 GDP가 5만불인 부유한 나라이다. 영국과의 인적교류가 활발했고, 다양성을 포용한 결과 8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_SS_에서 볼 수 있듯이 낡은 건물, 도로, 벽, 가구. 고등교육은 받았으나 일자리가 없는 한계. 아일랜드 상황은 미국 70년와 달랐다. 그들이 동경하는 모습이 50년대 미국 고등학생이었으니. 아일랜드 85년 학교 풍경은 우리나라 85년과 흡사했다.

교표 를 겉옷에 바느질로 꼼꼼히 박음질하고 학교를 다녀야했다. 만약 선생님들이 잡아당겨 떼어지면 그자리에서 얻어맞았다. 우리 어머니들은 여러개의 교표를 사서 옷마다 붙여야했다.  힘들기도 하고, 귀찮은 일이었다. 어쩌다가 잊기라기도 하면 체벌을 받았고, 집에와서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환경미화 비품, 화분을 사오라는 것을 강요당하기도 했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풀이 죽었다.

남자 중학교는 과격한 장난과 본드, 담배, 음란물과 같은 일탈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했다. 문학,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끼리끼리 어울렸다. 어젯밤에 들은 팝송을 가사도 모르고 따라부르곤 했다. "아워너 노왓러비~스~~. 아원츄투 쇼~~우미"
Murray Head의 One night in Bangkok
Foreigner의 I want to know what love is
Paul Young의 Every time you go away
를 AIWA 카셋트 라디오로 녹음해서 반복해서 듣고, 엉터리 가사도 받아적었다.

마치며

_SS_는 감독의 전작인 Ones나 Begin Again에서처럼 완성도가 높은 스코어가 없다. 완벽한 가창력과 감정을 실은 보컬도 없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 추억에 잠기게 하는 감동은 전작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내 옆에서 청소년이 되어 같이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세월이 너무 빠르다. 내가 나비꿈을 꾸고 있는 건지, 나비가 내꿈을 꾸고 있는건지.










Monday, May 23, 2016

스티븐 호킹의 경고 - 미지와의 조우

스티븐 호킹 교수는 보이저의 태양계밖 여행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만나게 될 외계 생명체가 어떤 행태인지도 모르면서 무방비 상태로 만나는 것이 과연 안전한 것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은 우주가 탄생할 때 빛을 내던 별들이 대부분이고, 그 별 주변의 수 많은 행성들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에 상상할수도 없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문명이 발달한 생명체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같은 생명체로 존중을 해줄까? 아니면 과거 18,19세기의 지구의 제국들처럼 식민지로 활용하려고 할까?


인간은 섭취한 영양분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우리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양계장의 닭들은 자기자신이 주인들로부터 잘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곧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Saturday, May 21, 2016

다음카카오의 O2O 서비스

첫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다. 아빠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예" 또는 "응" 이라고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 "어"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런 아들래미를 관찰해보면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크게 되면 스마트폰을 통해 사회와 소통할 것이다.

나조차도 매장에서 물건을 살때에도, 동네 근처에서 외식을 할때에도 먼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다.

O2O의 승자독식 (디지털 중세)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offline 사업이 스마트폰이 등장하여 online 사업에 의해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활에 가깝게 있는 offline 소비재 사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이삿날 업체에 청소를 맡겼다가 낭패를 본 경험은 한 두 번 있을 것이다. 인테리어 업체의 횡포를 당해 본 경험이라던가.

대기업이 관리하는 O2O는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이다. 품질을 대기업이 보장해줄테니까. 그러나 사업을 잘 해오던 소상공인들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마진을 대기업이 가져갈테니까. 최근에 카카오가 진출해온 사업들을 한번 나열해보자.

  • 교통 : 카카오택시, 카카오버스, 대리운전, 지하철
  • 외식 : 배달의 민족, 카카오 플레이스
  • 금융 : 카카오은행, 카카오페이
  • 뷰티 : 하시스
  • 집안청소 : ?
  • 숙박 : ?
  • 학원 : 키즈노트
  • 카센터 : 카닥
  • 세탁소 : ?

카카오는 소상공인들의 마진을 가져간다고 하지 않고, 그들이 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파이를 키우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O2O는 우리나라 지역에 제한적으로 사업을 할 수 밖에 없고, 우리나라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손님이 갑자기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카카오는 지주, 소상공인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직업군


직업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보고 싶다.
노동자, 생산도구를 소유한 자본가, 유통망을 장악한 사업가, 소상공인 (생산도구를 가지지 못한 개인사업가)

우리나라는 소상공인이 많다고 한다. 은퇴후 퇴직금으로 시도하는 것이 대부분 소상공인이다. 그들이 노력하면 성공하도록 사회 기반을 갖출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한단계 더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Monday, March 21, 2016

Queenscyche - Operation: Mindcrime (1988)

내가 어릴 때였다. TV 보는 것을 그리 즐겨 하지 않는 부모님이 가요 프로그램 (가요탑텐, 토토즐 등) 만큼은 챙겨 보시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내가 이제 부모님의 나이가 되니까 복면가왕을 챙겨보고 있다. 감수성으로 가득차 있었을 때 감동했던 음악을 다시 듣게 되니, 추억이 녹아 있는 노래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각티슈를 옆에 두고 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죄송하기도 하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2016년 3월 13일 일요일 저녁 복면가왕 프로에서 음악대장이 The Cross의 _Don't Cry_를 불러서 4연속 복면가왕에 올랐다. 패널 김구라가 음악대장을 Queenscryche의 Lead vocal Geoff Tate에 비유했다. 저음과 고음을 편안한게 오르내리는 기술이 비슷하게 느꼈나보다. 하지만, Queenscryche는 1980년대가 전성기였던 밴드여서 곡 분위기가 촌티나게 느껴질 수 있다. 일곱번째곡 _The Mission_과 열한번째곡 _Breaking the Silence_를 들어보면 80년대 헤비메탈의 전형이다. Accent가 있는 곳은 반가성의 고음, 후렴부의 화음, 샤우팅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허리케인 블루나 Jack Black의 "School of Rock"을 통해 헤비메탈을 접한 사람들은 곡을 들으면서 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80년대 밴드가 활동할 때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듣고 생활했던 세대에게는 여전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Operation: Mindcrime의 가사 (가사와 함께 음악을 들어보시라)

컨셉: (인용)
줄거리는 Nikki라는 이름의 거리의 부랑아가 정부전복을 꿈꾸는 혁명을 꿈꾸는 미스터리한 인물인 Dr.X를 만나 수술 (말 그대로 Operation:Mindcrime)및 약물에의해 Control되어 암살자로서 활동하게 된다그는 이 과정에서 자기에게 물건을 대 주던 원래 거리의 여자였다가 구원받은 수녀 Mary를 사랑하게 되지만, Dr. X에 의해 그녀를 없앨 것을 명 받는다. Nikki는 그 명령을 무시하지만 결국은 Dr. X의 계략으로 Mary는 죽음을 당하고, Nikki 는 파멸의 길(불법무기소지 및 수술후유증정신착란등)으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그리고 그는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게 된다.  


Manchurian Candidate 1962 movie trailer

가사와 함께 음악을 듣다보면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가 떠오른다. Manchurian Candidate. 일요일 낮 EBS에서 유명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기괴한 음향 효과, 주인공이 쇄뇌를 극복하고 탈출하는 엔딩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Bourne Series, 느와르 영화의 원조격인 _대부_도 연상된다. 전율이 흐른다는 표현이 여기에 적합할 듯.

Queenscryche와 비슷한 밴드로 Dream Theater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 밖에도 80년에 활동하던 많은 밴드들이 있다. Savatage, Symphony X, Rhapsody, Mastermind, Fates Warning 등이 잘 알려져 있는지만 Queenscryche 보다 더 감동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호불호가 갈리기는 한다.

Queenscryche를 Marillion의 Fish-era라고 하면, 음악대장이 추구하는 음악세계는 Hogarth-era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말하는 듯이 스토리텔링을 하는 앨범들이 훌륭하다. 음악대장의 정체(?)가 밝혀지면 그가 속해있는 밴드에 대해 얘기해봐야겠다.




Saturday, March 19, 2016

나는 학생이다

아들이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아빠이기 전에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선배로서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줘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된다.

고심 끝에 가장 먼저 도움이 될 말을 하나 생각해냈다.

"인생의 2쿼터까지는 투자를 많이 하라".

존 마에다는 그의 스승인 미츠 카타오카 교수로부터 인생은 4쿼터로 이뤄져 있다는 걸 배웠다.
(관련 글)

1쿼터 : 0~25세, 2쿼터: 26~50세, 3쿼터: 50~75세, 4쿼터: 76~100세

노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4쿼터까지 뛰게 되었다. 1, 2 쿼터를 열심히 뛰었고 운이 좀 따라줬다면,  3, 4쿼터는 보상이 투자보다 많은 시기이다. 물론 1, 2 쿼터에 대박을 터트려 3쿼터부터 보상만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3쿼터는 고통이 많은 시기이다. 보통 3쿼터부터 내리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뛸 수 있어서 괴롭다. 중요한 것은 3쿼터는 보상이 투자보다 커질 수 있지만,  여전히 투자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투자는 부동산이나 금융 투자와 같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거나, 보상없이 동료를 도와주거나 또는 새로운 human network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4쿼터로 이뤄진 대표 스포츠는 농구이다. 1쿼터는 워밍업을 하고, 2쿼터는 식스맨을 투입해서 주전들을 쉬게 해준다. 3쿼터는 승리를 위해 집중을 하고, 4쿼터는 승부수를 던진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마에다 교수(오른쪽). 2004년 MIT Media Lab. MITs300 PDA로 찍은 셀카.
2003년 가을에 처음 마에다 교수와 인사를 했다. 서로 가까워진 것은 2004년 1월. 그는 내가 가족들을 한국에 놔두고 혼자 미디어랩에 온 것이 신기하고 도와주고 싶었단다. MIT 미디어랩 tenure 교수중에 인기 많은 교수는 한학기마다 200여명이 넘는 학생 신청자들을 검토하고, 수많은 게스트들과 만나야 한다. 그렇게 유명인 중에 하나였던 마에다 교수는 4명의 딸을 두고 있는 아빠이기도 했으니 (지금은 다섯), 가족을 떠나 타지에 온 젊은 동양인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내게 시간을 할애했나보다.

32세에 나는 그렇게 가족을 떨어져 지내면서 배우는데 투자했다. 그러한 투자가 나중에 보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우리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마에다 교수는 2004년 A 기업의 요청으로 몇가지 설치물을 제작하고 납품하였다. 그런데 A기업이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곧 그는 맘을 고쳐먹고, 이것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했다. 그는 당시 38세. 여전히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하는 나이였다. A기업은 나중에 적절한 보상을 했고, 몇 년이 지난 후에는 advisory board로 그를 선임하였다.

단, 손해보고 일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투자는 아니다. 보상이 적더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면 투자인 것이다.

작가: 왕멍
중국 문화부 장관이었던 왕멍. 그는 문화대혁명 시절 우파 글을 썼다는 죄명으로 16년간 신장지구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벌을 받고 유배된다. 16년 동안 위구르어와 한어를 번역하면서 지냈는데, 결국 복원되어 50대에 장관이 된다. 70세가 되어 써낸 책의 제목은 "나는 학생이다" 이다. 곧 4쿼터에 들어서 끝이 얼마 남지 않아도 여전히 배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직업을 전직 장관, 학자라고 말하지 않고, 학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독특하지만, 내 아들에게도 그를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서로 다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다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녀에게는 내 삶의 가치가 배우는데 있다고 말하고 싶다.

Sunday, January 03, 2016

인터넷 시대의 디지털 컨텐츠

Jack Valenti와 대척점에 있던 Lawrence Lessig 교수가 얼마전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왔다가 중도 사임했다. Lessig 하바드대 교수는 CCL의 창시자이다. 7~8년전에 CCL에 대한 blog 글을 썼던 것이 떠올라서 찾아봤다.

몇 년전에 CCL (Creative Commons License) 에 대해 쓴 글을 보니 CCL이 선이고 copyright는 악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변한 것이 아닐 것이고, 정리해보자.

Jack Valenti (미 전 MPAA 회장) 가 MIT Media Lab에 와서 talk을 한 log를 다시 찾아봤다. 그의 업적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영화에 등급을 도입
  2. Copyright (저작권) 보호
  3. Internet 환경에서 저작권 보호 방법
CCL도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다. Internet이 널리보급된 환경이 되었다. Jack Valenti가 10년전에 상상했던 상황과는 세상은 더 변했다. Stanford가 FAST라는 protocol을 발명한 것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무선 인터넷이 발달했다. 무제한 요금제와 LTE 환경. 스마트폰에 P2P client를 돌리고 다운로드 받는다. 많은 예술가들이 쥐어짜낸 새로운 스토리가 영상매체가 되기까지는 자본, 시간,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 

Jack Valenti가 비난했던 공대생들이 쉽게 무료로 컨텐츠를 공유하고, 다운로드를 해낼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었다. 

한편 Lawrence Lessig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억제하는 것보다 다른 형태의 경제활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법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기술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piracy와 DRM은 창과 방패로 대결하고 있다.  



Saturday, January 02, 2016

경기도 광주,하남시 남한산성 2016-1-2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 등산을 하였다. 
남한산성 도립공원이 추천하는 등산로가 몇가지 있다. 오늘은 조금 route를 달리했다. 




지금까지 주로 시도한 등산로는 

마천역(5호선)-남한산성 서문-북문-산성로터리-점심식사-시내버스-산성역(분당선)-올림픽공원역

이었다. 

이 경로가 약간 아쉬운 것은 돌아올때 대중교통 이용시간이 좀 길다는 것.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갈아타는 구간도 많고.

그래서 무리해서 좀 많이 걷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성골마을 - 서문 - 북문 - 남한산 (벌봉) - 객산 - 선법사 - 향교말마을 (서하남로)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다. 
출발지는 마천역 (5호선)
도착은 30-5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잠실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등산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등산 후 느낌은 오랫동안 수영을 하고 나서 느끼는 노곤한 그것과 비슷하다. 

또한 요새는 명상하는 법을 돈 내고 배운다고 하는데,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걷는 것이 명상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오늘도 안개 때문에 멀리까지 볼 수 없었다. 맑은 날에는 잠실과 한강이 보여야 한다. 

서문으로 올라서 내려다보면 앞으로 걸어갈 능선이 보인다. 산성 보수 공사가 끝났나보다. 주욱 이어진 산성이 보인다. 

 남한산성길을 여러가지 경로가 있어서 자신의 체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가 있다.



연주옹성도 보수가 끝났다. 
남한산성은 옛날에 군사기지였다. 곳곳에 적들을 기습공격하고 방어하기 위한 인공적인 설치물을 볼 수 있다.


성 안쪽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어서 길이 넓다. 산책을 원한다면 성 안쪽을 걸어야 한다.


성 바깥쪽은 등산로이다. 다양한 등산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고라니(?), 노루(?)를 봤다.
소리 때문에 보게 되었는데, 처음 발견할 때는 약간의 공포심을 느꼈다.

흐린 날씨에 해는 없고, 혼자 산길을 걷고 있을 때.
이런 곳에서 강도나 초자연적인 것과 마주치면 무섭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까마귀 소리만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그 때, "샤샤삭" 소리가 평소 등산로에서 듣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풀숲을 고라니가 헤치고 지나갈 때 나는 소리인데 무서웠다.
육식동물이나 큰 짐승이 내는 소리라면 상당할 것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대략 아래 사진과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