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06, 2010

현실과 "칼의 노래"

역사는 반복이라고 했던가. 역사소설 "칼의 노래"의 구절이 현실에 투영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든다. 물론 "칼의 노래" 소설도 현시대의 작가가 창작한 것이 많으므로 현재 정치, 경제, 문화 상황을 반영하였을 것이다. 마치 "정조" 또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때 당시의 대통령이나 위정자를 묘사한다고 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칼의 노래"의 대사이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 갈 것이었다"

책 전체에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잘 묘사되어 있다. 임금은 장군을 죽이려고 했었고, 살아난 이유가 적 때문이었다. 적이 있었기에 면사 되었고 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전장이 끝나면 다시 임금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째 아들은전장에서 죽는다.


감히 장군의 절망적인 상황이 과연 현시대를 살아가며 선진 경쟁사들과 무한 경쟁을 하는 우리 기업들이 같은 고뇌를 하고 있다고 그대로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 기업의 적이 누구일까? 대한 민국의 기업 중에서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비전과 미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 목표를 도달하는데 사업영역이 겹치는 회사들이 경쟁회사들이 될 것이다. 마라톤을 같이 뛰는 경쟁자들도 있고, 가끔 옆에서 뛰다가 다른 트랙으로 바꿔 경쟁을 안하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적은 경영의 목표를 정하고 그 방향을 뛰다보니 옆에서 뛰면서 경쟁을 하며 방해를 하는 대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최전방에서 외국 선진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게임의 법칙에 의해 경쟁을 하고 있지 못하다. Davos Forum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그러한 면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이 부족함으로인해 우리 기업들은 적에 의해 자리가 정해지고 규정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싸이월드를 예로 들어보자. 싸이월드가 Social Network Service로는 facebook이나 myspace보다 훨씬 빨리 국내에서 유행했던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지만 국제화하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경쟁에서 뒤지면 결국 적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정해지게 된다. 우리 스스로가 목표와 전략을 정하고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면 적에 의해 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영환경이 그러기에는 매우 어렵다.

그 결과 기업에 속한 사람들도 그런 상황을 느끼게 된다. 그 기분은 장군이 처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장군도 적이 아니면 임금에 의해 죽음을 맞이 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우리도 기획했던 일이 성공하고 선진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실적을 내면 분명히 살고, 더 나은 상황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면에서 장군의 상황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을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경영자를 파트너로 가지고 있다면 행운일 것이다. 그런 성공까지 가기전에 내부 경영자나 파트너에 의해 뜻을 펴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10년전부터 우리 기업 환경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를 중요성을 언급한 것과 달리 투자를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최근 스마트폰의 시장 결과로 인해 그 중요성이 재강조되고 입증되었다. 적이 우리의 살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다시 위치를 정해 경쟁의 체비를 갖춘다면 다시 한단계 나아진 모습으로 생존 싸움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Friday, July 02, 2010

Google's Innovation Machine

미국 메사추세트주의 Babson Colleage의 젊은 교수 Bala Lyer와 경력이 많은 교수 Thomas H. Davenport가 2008년 4월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은 글을 읽고 느낀점을 생각해봤다. 이 글은 구글의 성공과 성장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본 블로그의 글은 단순히 그들이 올린 글을 번역한 것은 아니고 읽어본 견해를 나타내 보고자 한다. 그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구글이 성공했는지 한번 엿보기로 하자.

구글의 성공은 Microsoft의 성공과 비교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Microsoft는 Business model이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라이센스를 파는 모델이었다. 다분히 하드웨어 제조업과 저작권을 생각해서 만들어낸 모델이라서 단순하다. 많이 팔수록 수익이 많이 나는 모델이었기 때문에 Intel, IBM의 표준화된 개인용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적화하고 개발하면서 더욱 집중 투자를 하였다. 두 교수는 구글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구글의 특별한 점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10여 페이지의 보고서로 정리하였다. 원문은 직접 읽어보기로 하자.

첫째, 구글은 전략적 인내력을 가진 회사이다. (Practice Strategic Patience)
구글은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leading하는 회사이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Java와 같은 새로운 컨셉을 제안하거나 세계 최초의 vector graphics를 발명한 회사도 아니다. 다만 Search Engine과 사업모델을 창의적으로 결합한 아이디어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참을성 있게 뒷받침 해준 자본과 경영층이 구글을 관리하고 있다. 현 구글 CEO인 Eric Schmidt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글이 전세계 정보를 정리하고 구글의 Mission을 달성하려면 대략 300년 걸릴 것 같아요"
"일단 확산 먼저. 수익은 나중에. 일단 사용자를 늘이고 나면 수익 모델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생긴다"

보통의 회사들은 단기 수익을 욕심을 내며 조바심을 가진다. 투자자나 주주들도 단기적으로 상업적이지 못한 개발 방향에 반대한다. 이러한 조바심을 구글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구글은 기술력이란 한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회사라기보다는 여러 영역의 창의력과 앞을 내다보는 경영층을 보유한 회사이다.

둘째, 구글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은 Scalability이다. 여기서는 "Built to Build"라는 표현으로 인프라를 구축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Linux machine (Blade 서버)를 하나 install하면 자동으로 전체 데이타 센터의 일부가 되도록 관리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과거의 IBM과 Sun, Oracle로 대표되는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서버 구조에서 Cloud라고 일컫는 보다 대용량을 처리하고 유연한 인프라로 진화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매우 싸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소비자까지 전달하는데 단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전통적인 제조업들은 나름대로 제품 개발 단계를 가지고 있다. 기획, 설계, 검증 에서 애프터 서비스까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발 단계를 엄격히 control하고 있으며 많은 개발자들이 단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개인 생활을 포기하기도 한다. 구글은 Cloud 시스템을 이용하여 기획, 설계부터 검증까지 모두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들의 대표 서비스인 gmail도 얼마전까지 beta로 사용자들에게 제공되어졌다. Google Lab이라는 공간을 통해서도 직접 사용자들을 베타 테스터로 활용하고 있다. 똑똑한 사용자들을 무료로 끌어들여 제품을 테스트하는 방법은 다른 web service 회사들이 부러워할만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을 Innovation hub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다. Hub는 여러 source가 만나는 곳,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을 의미한다. 즉, 여러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 업체들의 자신의 사업 모델을 성사시키기는 장소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업은 찾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놓은 단계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업 (mashup)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글은 이러한 혁신적인 사업의 바탕을 제공해주고 있는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세째, 구글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은 그들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Eco-system이다. (Rule Your Eco-System) 그들이 직접 운영하고 유지하는데 비용이 든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분석하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내고 소비자들과 상호작용하는 마케팅 비용을 모두 Eco-system으로부터 얻어내고 있다. 생산자는 Query를 입력하는 소비자이기도 하고, gmail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기도 하다. 또한 local 광고를 자신의 blog에 올리는 Ad Sense의 사용자들이기도 하다. Eco-System은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을 해결해줘야 한다. 그들이 수익을 원하면 수익을 만들어주고 더 많은 참여자를 이끌어내야 된다. 이것이 다시 입력으로 작용하여 더 많은 수익이 만들어져야 된다. Feed Forward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구글은 이러한 Eco-System을 정확이 이해했고, 대부분의 비용을 R&D에만 투자하고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네째, 구글이 가지고 있는 특징의 하나는 그들의 서버 시스템의 architecture를 항상 갈고 닦는데 있다. 그래서 항상 위험도가 있는 시장을 시도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사업 지도 (Business map)을 그려서 기존의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는 강자들과 경쟁을 하지 않는 positioning을 Eric Schimit를 비롯하여 경영자들이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그들이 Don't be Evil이라는 모토와 함께 다른 회사들의 이익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최근 여러 Android 등 휴대폰 사업, 코덱의 공개 등 기존 사업자들의 사업모델으 붕괴시키는 모습은 그들의 모토를 의심하게 만든다.
다섯번째, 조직 시스템을 통해 혁신의 DNA를 만들어냈다. 세상의 많은 회사들이 혁신을 강조한다. 경쟁에 살아 남고 수익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혁신을 직원들에게 요구하거나 업무 외 시간에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을 택한다. 가끔은 회사 밖의 연구단체나 학교에 일부 투자를 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글처럼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resouce인 인력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직원이 일하는 시간의 20%를 업무 외의 일을 하는데 투자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한 예산을 투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어떤 기업이 구글을 역할 모델로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구글의 이러한 과학적이고 자연스럽게 혁신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시장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인가. 구글이 시도하는 모든 혁신이 항상 시장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베타 서비스중에서 선택되는 것만이 자연스럽게 계속 서비스를 유지한다. 단기 성과와 평가 위주로 조직은 운영하는 기업은 이러한 혁신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 결국 참을성을 가지기 어렵고 실패를 기다릴 수 없는 기업문화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인터넷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기업문화. 실패를 인정하는 문화가 결국 기업의 혁신을 가져온다는 명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다. 다만 이것을 실천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혁신이 이끌어내는 투자의 범위와 비율을 선택하는 것은 경영층의 몫이다.

Thursday, July 01, 2010

Keith Haring 전시회 @소마미술관

2010년 6월 17일부터 9월 5일까지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Keith Haring의 전시회가 있다. Keith Haring은 58년 개띠로 18살 피츠버그 아이비 상업 예술학교에 입학했는데 상업 예술에 관심이 없어서 독학을 했다. 스무살에는 뉴욕시의 시각예술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그래피티 예술가를 비롯하여 대안예술 공동체를 만나 영향을 받는다. 22세부터는 뉴욕시 지하철역 광고판에 덮힌 검은 종이에 흰색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아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여 Pop Shop을 열고 그의 예술작품이 티셔츠에 찍혀 팔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31세에 AIDS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까지 미국인들에게 사랑 받는 아티스트로 남아있다.

위 작품은 소마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으로 앤디워홀을 쥐로 묘사한 것이다. 제목이 "Andy Mouse"이다. 앤디워홀을 비하한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당시에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었던 미키 마우스로 나타낸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인해 Pop Shop을 열고 그의 작품이 담긴 티셔츠, 버튼, 스티커를 팔았다. 아쉽게 Soho에서 2005년에 문을 닫았다.

아이폰 뒷면에 붙은 스티커는 Keith Haring이 즐겨 그렸던 개와 원숭이다. 가장 충복하고 순진하다고 생각한 개와 어린애를 실제로 많이 그렸다. 이 스티커는 4x5 사진 크기의 종이에 20여개를 같이 세트로 5000원에 소마 미술관에서 구입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이 작가가 만약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어떤 평을 받았을까? 과연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남을 수 있었을까?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을 넘나 들었고, 지하철 그라피티를 한 경력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윤곽을 강조하고 낙서와 같은 표현 기법을 순수미술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대중 예술가중에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미술가중에서는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고 대중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많이 떠오른다.

우연히 그도 58년 개띠이다. 당시에 인기를 많이 얻었던 대학가요제 출신이나 대학 밴드 출신과는 달리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가수로 고등학교도 중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시대의 진정한 가객으로 그를 중심으로 많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모여서 활동을 했다. 그도 Keith Haring과 비슷한 나이인 33살에 간경화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사랑하고 리메이크 하고 있다.

1962년생의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밴드에서 활동하였으나 결별하고 솔로로 데뷔하여 한 앨범을 세상에 내놓고 25세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1987년이었다. 나중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 김종진이 결별 이유를 밝혔다. 유재하는 작곡가로 김현식의 앨범에 많은 곡을 줬었다. 김현식은 그중의 한곡 "가리워진 길"만 선택을 하였다. 유재하는 자신이 아끼는 나머지 곡들을 선택해주지 않은 섭섭함에 자신이 직접 앨범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밴드를 떠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김현식은 유재하의 곡을 좋아했지만 다른 밴드 멤버들의 곡도 골고루 선곡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유재하의 유고작 1집 "사랑하기 때문에"에 세상에 나왔다. 그 앨범의 모든 곡이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한곡의 가사를 감상해보자.

그대 내 품에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위에 앉고 싶어라

밤하늘 보면서 느껴보는 그대의 숨결
두둥실 떠가는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술잔에 비치는 어여쁜 그대의 미소
사르르 달콤한 와인이 되어 그대 입술에 닿고 싶어라

내 취한 두 눈엔 너무 많은 그대의 모습
살며시 피어나는 아지랑이 되어 그대 곁에서 맴돌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어둠이 찾아들어 마음가득 기댈 곳이 필요할 때
그대 내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64년생으로 노찾사, 동물원과 함께 활동한 대학밴드 출신 보컬이다. 워낙 목소리가 크고 음색이 남성스러워서 데뷔초기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도 33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000회 이상의 공연과 대중으로부터 사랑 받는 많은 곡을 남겼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축제때 찾아와서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부르던 그의 소박한 노래를 기억한다. 8,90년대 대학생활을 보낸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조금 살펴보면 우리 나라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을 후대에까지 오랫동안 남겨 물려주고 사랑받게 해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